분노의 윤리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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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있는 분노를 여대생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근데 이 분노라는 것이
 
 
이 영화에서는 각 인물들 자신의 과오는 모른채 본인을 방어하고,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표출된다. 이 영화속에서 정의를 위한 분노라는 것은 없다.
 
 
단지 불의를 위한 분노만 존재한다. 나는 살아야겠다라는
 
 
생각과 나는 아무잘못없다고 항변하기 위한 분노만 존재 할 뿐이다.
 
 
 
 
전 여자친구를 살해해놓고는 이를 몰래 관찰하고 도청한
 
 
옆집남자에게 가장 쓰레기는 너라며 욕을 쏟아낸다.
 
 
(자신의 살인은 도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불륜의
 
 
씨앗이 되었던 사채업자 마저 죽이고 싶은 분노에 차있다.
 
 
오로지 전 여자친구인 여대생에 스토커적인 사랑때문이다.
 
 
 
 
사채업자는 오로지 돈만이 최고다. 여대생을 룸살롱에 보내고,
 
 
대학교수의 불륜상대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채무의 이자를 깐다.
 
 
죽은 여대생이 집에서 성관계를 할 때의 신음소리를
 
 
도청한 파일마저 팔아서 돈을 챙기려 한다.
 
 
이를 방해하는 존재들은 모두 폭력으로 상대해 줄 뿐이다.
 
 
분노를 다스리려고 한다고 하지만 성미를 잘못 건드리면 그 분노는 폭력으로 곧장 나타난다.
 
 
 
 
죽은여대생의 옆집남자는 경찰임에도 여대생을 흠모한 나머지 도청기,
 
 
카메라를 몰래 심어놔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전문 음향장비를 집에 갖추고, 집전체를 방음벽을 설치,
 
 
모든 음성 영상자료를 녹음 녹화를 할 정도로 자신의 파일을 소중히 다룬다.
 
 
누가 이것을 가져가면 쓸려고 했는지 총까지 집에 고이 숨겨놓는다.
 
 
결국 자신의 소중한 자료들을 찾기위해 총을 들고 이를 회수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덕망높은 대학교수는 일반 성매매업소는 얼굴이 팔려 룸살롱만 다닌다.
 
부인이 있는데도 살해된 여대생과 불륜관계를 갖고 있었다.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리고 주위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극한 분노를 드러낸다.
 
자신의 부인마저 도와줄 생각이 없자 자해까지 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교수의 부인은 여대생과 잠을 잤던 날 자신과도 잠을 잤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등을 돌려버린다.
 
교수의 누명은 벗기기는 커녕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걸리적거린다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교수의 불륜을 이용해 남편을 빈털털이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 전반에 걸쳐 모순을 통해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오도록 배치해 두고 있다.
 
얼핏보기에 영화전반중반까지는 진지하게 흐르지 않을까 했었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래도 각
 
인물들의 분노를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말도 안되고 웃기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려고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이를 통해 누가 가장 못된놈일까 생각해보게 끔 만들고
 
그 과정에서 모순되는 점들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대생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철저히 이용당한 약자였다.
 
 
가난했던 그녀의 삶은 돈 때문에 사랑도 이루지도 못하고,
 
 
사채 때문에 누군가의 노리개가 된다. 사랑을 찾는 듯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에 바쁜 유부남일뿐이다.
 
 
또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옆집 남자에게 관찰당한다.
 
 
스토커적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고 그 이후에는 교수의 부인은
 
 
이 사건을 이용해 위자료를 모두 가져가 버린다.
 
 
 
눈여겨볼점은 전 남자친구가 자수하고 감옥에 들어갔는데
 
자신은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말하며 교수의 부인을 두둔하는 장면이다.
 
이 때 대학교수가 분노하며 머리채를 잡아당기지만
 
전 남자친구는 덤덤히 받아들이고 맞대응하지 않는다.
 
자수해서 정의를 찾는다고 했던 그가 정의를 선택했을 때에는 분노가 드러나지 않았다.
 
정의를 택했을 때에는 분노를 한결 다스리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도 교수부인이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정의를 택했기 때문에 순수한 정의라고는 할 수 없겠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살아남은 접대부가 사건의 진실을 쥐고
 
 
있는데 이 여자마저 사건의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수도 불륜녀와 만났던 인도레스토랑에서 만나자며 뉘우치는 모습은 전혀 없다.
 
 
교수의 부인도 조용히 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거래제안에 응하는 모습이다.
 
 
이 장면을 보며 불의를 택한 이들 사이에서 또다른 사건이
 
 
터지며 자신의 이득을 위해 분노가 또다시 폭발할 것임 암시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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